마광남/ (사)장보연구연구회 전 이사장

각안대사(覺岸大師, 아호: 범해(梵海),1820 ∼ 1886)는 완도 석장리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조선 말엽의 명승으로서 호는 범해(梵海), 성은 최씨이며 자는 환여(幻如)이다. 1835년 시오(始悟)에게서 배웠고 의순(意恂)으로부터 형을 받은 후 841년 스승 시오의 불법을 이어받아 대흥사 진불암에서 개당(開當) 22년간 경전을 강론하였다.

대흥사 13대 국사의 한 분인 범해 각안 스님으로 인해 조선조 중엽 지금의 해남 대흥사 산내 암자인 진불암에는 70여 명의 스님들이 참선 정진하고 있었다고 한다.(한국사찰전서, 해남 진불암) 각안대사의 저서로는 동사열전(東師列傳), 범해선사유교(梵海禪師遺橋), 경훈기(警訓記), 사십이장종기(四十二章種記), 참상선지(參商禪旨), 간화결의(看話決疑),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인조실록(仁祖實錄),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이조불교(李朝佛敎)가 있다.(한국문화원연합회) 

또한 1880년 각안은 진도의 쌍계사에도 머물며 동산(동산), 지순(지순)과 함께 대법당과 시왕전, 첨성각을 중수했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가 전국 제일의 명산이라고 자랑하는 산이 상왕산(象王山)이다.

완도의 주산이며 해발 644m로 가파르지도 않고 사철 푸르러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우 즐겨 찾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산이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상황(象皇)으로 바뀌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 그렇게 불리고 있는데 무엇이 잘못되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오봉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내 고향의 산 이름 하나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다르게 부른다면 이 고장에서 사는 사람들의 수치라 생각된다. 우리의 명산이 상왕산(象王山) 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있다. 동문선 제83권 서(序)편 만덕산 백련사 정명국사 시집서(萬德山白蓮社靜明國師詩集序)에 정명국사(靜明國師)는 호적(胡賊)의 난을 피하여 상왕산(象王山) 법화사(法華社)에 왔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산의 남쪽에 있는 용혈암(龍穴庵)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법화사지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용혈암자의 터는 어디인지 찾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록이 동문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응송(應松) 박영희(朴暎熙)스님(1892.1. 군내리 2구 출생)이 쓴 장보고전에도 1247년 정미동월(丁未冬月) 만덕사 제이국사정명선사(萬德寺第二國師靜明禪師)가 호구(胡寇)의 난(亂)을 피하여 완도 상왕산법화사(莞島象王山法華社)에 입(入)하였다라고 같은 기록을 남겼으며, 또한 이 책에는 상왕산에 있었던 암자들도 기록되어 있다.

그 이름들을 보면 천왕사지(天王寺趾), 불당사지(佛堂寺趾), 관음사지(觀音寺趾), 중암사지(中菴寺趾), 무위사유지(無爲寺遺趾), 등등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절터들을 복원하여 화려했던 당시의 명성을 찾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명국사(1205~1248)의 속성은 박(朴), 이름은 천인(天因), 17세에 진사(進士)에 뽑혔으나 과거에 낙제, 원묘국사(圓妙國師)를 찾아가 승려가 되고, 천태교관(天台敎觀)을 이어받아 그 후계자가 되었다.

또한 혜일대사는 조카인 정언 이영의 귀양길을 따라왔다 중암사에서 승려생활을 했고, 그가 남긴 시들 중에도 상왕산(象王山)아란 제목의 시가 있다. 그런가 하면 대사의 부도가 보길도에 가 있는데 이 또한 제자리로 와야 할 것이다.

1788년에 규장각 검서관(檢書官)을 지낸 성해응(1760-1869)은 1825년에 완성한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外集卷六十三) 고적류(古蹟類) 청해진(淸海鎭)이란 제목의 글에서 청해진재조선해남현서양사십리(淸海鎭在朝鮮海南縣西洋四十里)。주이백구십리(周二百九十里)。고려위완도(高麗謂莞島)。조선위가리진(朝鮮謂加里津。유상왕봉(有象王峯),사현봉대(射峴烽臺),법화암(法華菴),천연대(天然臺,전석계제명승(全石溪諸名勝) 등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즉 청해진은 조선나라의 해남현 서쪽바다 40리에 있다. 둘레가 2백9십리이고 고려 때에는 완도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가리진으로 불렀으며 상왕봉이 있고 활터언덕마루에는 봉수대(봉화대)가 있고 법화암이 있으며 천연대도 있고 모두 바위와 계곡으로 되어 있어서 이름난 명승지들이 있다.

불가의 시각에서는 청암과 목모도, 그리고 도암이 있다.(부처님 눈으로 보면 푸른 바위, 모과 섬, 도인바위 등이 방방곡곡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근거로 이제부터라도 하나하나 본래의 이름을 찾아 바르게 불렀으면 한다.

뿐만 아니라 고려조 고종 때의 정언(正言, 정육품) 이영(李潁)이 완도에 유배되어 귀양살이 할 때 그의 숙부인 혜일대사가 이곳에 와서 상왕봉(象王峰) 아래 대지골에 중암이란 암자를 짓고 귀양살이를 하였다. 얼마 후에 정언 이영은 귀향이 풀려 예부상서(禮部尙書)란 벼슬에 올라 귀경하였으나 혜일대사는 홀로 산수를 즐기며 암자를 지켰다. 혜일대사가 입적한 후 그의 문하승들이 혜일스님의 부도(浮屠)를 중암사에 세웠다. 혜일대사가 당시 상왕봉을 위시한 주위의 절경 등을 찬미하여 읊었던 시들이 있다.

여기에서도 우리의 산 이름이 상왕이란 것을 알 수가 있다. 상왕산에 있었던 암자들을 모두 복원하여 옛 명성을 다시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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