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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구십구곡수 흐르는 비옥한 한들
완도읍과 군외면의 경계를 이루는 대야리는 1구와 2구로 나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청해진 시절에 이곳에 청빈관이 있었던 곳이어서 청빈리가 와전돼 청비리, 또는 청천리라고 불리게 됐다고 말한다.대야리는 1855년 가리포진이 독진으로 승격될 때 인근 대
박상석 기자   2014-11-20
[뉴스] 지석영 유배지이자 장석천 출생지
신지면 송곡리(松谷里)는 1630년경 조선 인조시대에 김해김씨가 처음 입주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송곡리는 수군 만호진이 설치돼 진리(鎭里)라고 불리다가 수군진이 철폐된 이후 마을 인근에 소나무가 울창한 데에서 따 송곡(松谷)으로 마을
완도군민신문   2014-11-13
[뉴스] <우리마을 우리섬> 약산면 당목마을…④
완도군 동쪽 육로인 고금도 77번 국도와 덕암에서 830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가 보면 약산면의 끝자락쯤에서 당목(堂木)마을의 당목항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금일도와 생일도를 약산 당목마을에 연결하는 육로와 바닷길 접선 지점인 것이다. 그래서 당목마을은
박상석 기자   2014-10-30
[뉴스] 삼도수군 본영, 고금․약산 중심이었다
덕동마을의 역사는 곧 고금면의 역사와도 같다. 그래서 덕동마을을 말할 때는 고금도의 역사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고금도진의 변화 과정을 풀어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본래 고금도의 섬 이름은 ‘고이도’라고 했다고 문헌에 전한다. 이후 차차 조금씩
박상석 기자   2014-10-23
[사회] 일출 보기 좋은 동네
참 따뜻하고 포근한 마을이다, 1980년 이전까지만 해도 완도읍의 중심인 군내리 1구에 속했던 망남리는 본래 ‘본낭(남)구미’ 또는 ‘본낭기미’라 불렀다. 최근 들어 전국의 지번이 모두 도로명주소로 바뀌었지만, 완도읍 군내리 1번지가 이 마을에 있다.
박상석 기자   2014-10-02
[뉴스] 한들에 터 잡은 신지 큰 동네
완도가 그렇듯 신지도(薪智島) 역시 산업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섬에서 육지로 변모했다. 섬이 연륙되면서 생활도 변했다. 신지가 섬이었을 때 신지 주민들은 땅보다는 바다에 의지해 살아왔다. 섬 내의 농토가 비좁고 척박한 반면에 해초와 어패류가 지천인
박상석 기자   2014-09-25
[뉴스] 완도 관문이자 영원한 육상교통로
마을의 역사는 그 곳에서 살아온 주민들 삶의 기록이다. 그 기록에는 달콤한 추억이 담겨 있고, 또 쓰라린 기억이 함께 남아있다. 그래서 크든 작든 모든 공동체 역사의 면면에는 삶의 행복한 장면과 가슴 아픈 장면이 비빔밥 속 나물들처럼 잘 버무려져 있기
박상석 기자   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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