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희(빙그레식당 대표)

몇 년 전의 일이다.

104년만의 가뭄이라고 해서 논밭이 쩍쩍 갈라진 모습이 TV 뉴스에 나오고 신문지면에 연일 오르내렸다. 밭작물들도 물이 그리워 숨이 차보였다.

해마다 오월쯤이면 내 마음은 부모님이 농작물을 기르시는 밭으로 향했다. 장마철 물외 크듯이 쑥쑥 자란다는 말처럼 하룻밤 자고나면 호박넝쿨 사이로 애호박이 주렁주렁…

​하루 한나절 비온 뒤면 오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들에 반해서 부모님도 밭에 나가시기 전에 호박서리 오이 서리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내가 기르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오지고 옹글져서…. 그런데 그해에는 제대로 자란 오이하나 호박하나가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쓸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왕 왔으니 깻잎이나 따가야지 하고, 깻잎을 따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저기, 감나무 밑에도 가봐라” 그러셨다.

감나무 밑에서 자라고 있는 깻잎은 연하고 부드러워서 순간 “엄마 이 깻잎은 진짜 부드러워” 그랬더니 “부드러우면 뭣하냐? 열매가 안 열리는디…” 순간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

향도 없고 열매가 적게 열리는 그늘 밑에서 자란 깻잎과는 달리 자연이 주는 햇빛과 비바람을 맞고 자란 깻잎은 향이 넘치고 들깨가 많이 열린다. ​그래서 들깨기름도 고소하고 들깨가루도 고소해서 각종 음식 재료로 많이 쓰인다. 장아찌로 담아두면 해가 지나도 먹을 수 있다. 그런가하면 부드러운 깻잎은 연해서 금방 물러져 버린다. 자연의 섭리가 인간의 섭리와 비슷하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각종 모든 농사가 자식농사와 똑 같다. 고난 없이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만 자란 아이들이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넘어져 버리는 것이나 비, 바람, 태풍, 눈보라 없이 자란 농작물들이나 약하기는 매일반이다​.

시인들은 어쩌면 시를 그렇게도 잘 쓰는 걸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중략-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성경에서도 말씀하신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3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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