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로와 해로의 연결점으로 다시마 생산이 주업

 

완도군 동쪽 육로인 고금도 77번 국도와 덕암에서 830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가 보면 약산면의 끝자락쯤에서 당목(堂木)마을의 당목항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금일도와 생일도를 약산 당목마을에 연결하는 육로와 바닷길 접선 지점인 것이다. 그래서 당목마을은 늘 뱃길을 이용해 금일과 생일 오가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다.

당목마을이 처음 들어선 시기, 즉 정확한 정착 시기를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약 350년 전에 박씨 선조가 처음으로 이곳에 입도해 마을을 개척하고 이후 차례로 입주한 권씨, 갑씨 등이 정착해 살았다고 전하고 있다.

주민들은 인근 정착민들보다 더 협동심이 강해 타 마을 보다 빠른 시기에 마을을 형성했다고 자랑했다. 그 때문일까. 약산 21개 마을에서 당목마을은 청년들의 단결심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30명의 청년들이 하나가 돼 활기있는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이 마을의 이장 권사일씨가 가장 내세우는 자랑거리였다.

당목마을은 옛날에 고흥군과 금일을 연결한 포구가 있어 ‘포촌’이라고 불렸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다가 당과 주변에 당숲이 우거진 것에서 따 ‘당목마을’이라고 개칭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마을 앞에 세워져 있는 당은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아주 옛날 마을 치도(治道)작업 중 계천에서 괭이에 상처를 입은 둥근 돌이 피를 흘리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방풍림에 신당을 지어 그 돌을 정중히 모셔놓은 데서 비롯됐다. 그 후 마을주민들은 당목마을 당숲을 성역으로 여겨 가마와 상여 등을 못 지나가게 하고, 당과 당숲 주변에서는 용변마저도 금기했다. 이를 거역해 화를 입은 사람도 있었다고 이 마을의 김두봉 어르신이 진지하게 설명했다.

주민들은 이런 마을의 유래와 향토유적 제4호인 당목마을 당집과 향제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매년 정월 초엿새마다 정성스럽게 당제를 올리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동향으로 자리잡은 당목마을은 마을 뒤쪽으로 공고산과 절골이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수심이 깊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따라서 농토는 협소하되 천혜의 청정바다는 김과 미역, 다시마 등 해초를 양식하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김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김양식에 주력하다가 한때는 근동에서 미역양식을 가장 많이 하던 마을이었다고 김두봉 어르신과 마을주민 오세경씨가 설명했다.

오늘을 사는 당목마을 주민들의 주 소득원은 단연 다시마를 꼽는다. 실제로 마을 주변 밭은 온통 다시마를 건조하기 위해 펼쳐놓은 초록색 그물로 뒤덮여 있는 것이 이채롭기까지 하다. 약산과 금일권에서는 자연부락 단위로 최대 생산지가 바로 당목마을이라고 권사일 이장은 설명하고, “약 100호가 사는 당목마을은 주민들이 소득이 고루 많은 게 특징이다”고 덧붙였다. ‘고루 잘 사는 마을’이라니, 듣던 중 가장 반가운 말이다. 이어 권 이장은 “마을 주민 중 22호가 매년 5월부터 12월까지 멸치어장을 하고 있어서 다시마와 함께 멸치를 마을의 대표적인 소득원이라 해도 맞을 것이라 말했다.

마지막으로 권사일 이장은 “동향으로 앉은 당목마을은 태풍 철이면 동풍이 맞닿는 곳이다”며 “당목항이 있어 이곳을 이용하는 배들이 많은데도 접안시설은 부족해 어려움이 많으므로 하루빨리 당목항이 3종항으로 승격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것이 마을 주민들이 바라고 있는 유일한 숙원사업이라는 설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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