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창(어촌민속전시관장)

엄동설한의 움츠림에서 벗어나 봄이 기지개를 켜니 제일 먼저 시골집 돌담 너머로 하얀 매화가 고개를 내밀었다. 뒤이어 앞산의 나무 사이사이에서 분홍빛 진달래가 너울너울 춤을 추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에 노란 병아리들이 아장아장 걷는 듯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눈부신 봄볕에 하품을 하면서 졸고 있는 나그네의 게으름을 허용치 않으려는 듯 성질 급한 봄은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순식간에 우리들 곁에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뒤따라 온 벚꽃이 잠시 동안 환한 얼굴을 내밀더니 이내 하얀 꽃비가 되어 길 위를 뒹굴었다. 봄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동네 앞산은 연두색 봄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더니 시간의 흐름 속에 봄의 한복판에 사방은 온통 초록빛으로 탈바꿈한다.

해남을 지나 관문인 완도대교를 지나서 찻길을 따라 오다 차창 밖을 내다보면 길 어깨의 옹벽을 따라 온통 붉은 나무가 줄지어 서서 눈길을 잡아당긴다. 마치 봄은 멀리 떠나고 가을의 한복판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모습이다. 늘푸른 키작은나무(상록소교목)의 이름표에는 홍가시나무라고 쓰여 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듯이 줄기나 이파리에 가시가 달려있는 줄 알고 아무리 두리번거리며 쳐다봐도 줄기와 잎의 어디에도 가시는 보이질 않는다.

봄이 오면 꽃이 피기에 앞서 붉은 빛을 띠는 새순이 하나 둘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묵은 초록을 덮어버리고 붉은 색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름은 형제자매처럼 보이지만 가시나무․붉가시나무․종가시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지만, 홍가시나무는 장미과로 종이 전혀 다른 나무다. 이밖에도 호랑가시나무나 자연상태에서 호랑가시나무와 감탕나무가 교배하여 새로운 종으로 다시 태어난 완도호랑가시나무는 감탕나무과에 속한다.

만물이 약동하는 봄에 새순이 돋아 날 때는 붉은 빛을 띠다가 여름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점차 초록색으로 변했다가 가을이 되면 잎에 단풍이 들어 선홍빛깔로 변신을 거듭하여 홍가시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일본이 원산지로 알려진 이 나무는 관상용 조경수이나 요즘은 울타리나무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남들과 같거나 비슷해서 차별화가 되지 않으면 그 존재가 부각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나무나 화초를 심어서는 외지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 수가 없다. 온통 초록이 판치는 봄날에 꽃인 듯 단풍이 들어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붉은 빛의 강렬함을 뿜어내는 홍가시나무가 우리 동네 울타리와 큰길의 가로수로 곳곳을 뒤덮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어본다.

사방이 초록으로 판치는 가운데서 불꽃처럼 홀로 우뚝 서 붉은 빛을 내뿜는 그대 이름은 홍가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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