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희(수필가)

 

작년에 아버지께서는 무우 농사를 망치셨다.

겉모양은 예쁘게 잘 생겼는데 칼로 썰어보면 가운데가 바람들어간 무우처럼 얼기설기 구멍이 숭숭 나있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 많은 무를 버리지 않고 땅속에 묻어 두셨다가 한가마니씩 짊어지고 오신다.

덕분에 올 겨울 내내 무값은 들지 않고 육수를 시원하게 끓였다.

봄이 되어서야 “이것이 마지막이다”하시며 주고 가신 무우를 다 쓰지 못하고 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거뭇거뭇해진 무우를 들다가 깜짝 놀랐다.

묵직했던 무우가 가볍디 가벼워져서 무우를 살펴봤더니 가운데가 뻥 뚫려서 텅비어 있었다. 그 순간 “ 이렇게 자신을 내려놓으면 삶이 훨씬 가볍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면서도 무수히 많은 깨우침 속에서 나는 늘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똑 같은 잘못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하기는 이런저런 실수를 고쳐가며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성인이 되어 있겠지만 다들 나처럼 비슷한 실수를 경험하면서도 나와 비슷하게 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 땅에는 성인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늘 내려놓아야지, 내려놓아야지 하면서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내려놓을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 인생인데…. 인생에 대해 별 특별한 욕심도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희망 없는 슬픔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지나간 모든 봄들은 나에게 희망을 주었었는데 이 봄은 나를 지치게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결코 가질 수 없도록 만드신 몇 가지 것들을 통해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직도 여전히 세상을 조금은 사랑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 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 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1서 2: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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