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창(완도어촌민속전시관장)

 

산 위에는 하얀 고깔모자를 머리에 쓴 듯 만년설이 덮혀 있고 산기슭에는 울긋불긋 야생화가 피어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본적이 있는가. 필자는 지난 2009년 지인의 초청으로 열흘 동안 스위스에 머물면서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알프스의 유명한 산들과 관광지를 둘러보고 온 적이 있다. 그림엽서나 달력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산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지만, 특히 인상이 깊었던 것은 유명 관광지 내의 교통수단인 전기자동차였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제작사인 파라마운트사의 로고로 유명한 마터호른(Matterhorn) 산이 있는 청정 산악마을인 체르마트(Zermatt)에 도착했을 때 경험했던 일들은 특히 더 기억에 남아 있다. 전기 기차를 타고 역에 도착하자 수많은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짐을 싣고 숙소까지 타고 갈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다. 역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설프게 생긴 전기자동차 택시와 마차들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체르마트의 관문인 태쉬(Täsch)에서부터는 일체의 화석연료 차량의 진입이 금지되어 있는 카 프리(car-free) 지역으로 시내에서 외부차량들은 볼 수 없었다. 짐을 실을 때 필요한 전기자동차와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고, 마을이 크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이 마을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유명 관광지들은 대부분 깨끗한 자연환경을 오랫동안 지키기 위하여 편리함보다는 조금은 불편하지만 이를 참아가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대신 거리에 차들이 없어 여러 가지로 덕을 보고 있었다. 우선 공기의 질이 무척 깨끗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고, 도로가 넓을 필요가 없으며, 주차장 확보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도 거의 없단다.

올 연초에 전라남도는 ‘탄소제로 에너지 자립 섬 50개 조성’과 에너지 기업 700개 유치, 일자리 3만 개 창출 등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신산업 중심의 「에너지산업 육성 10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에너지산업과 관련된 여러 시책이 있는데, 특히 눈길이 가는 시책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대처해 ‘탄소-제로 섬’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쯤에서 우리 지역과 연관시켜 ‘오염이 없는 청정 섬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지역에는 265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고, 그 중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55개의 섬들이 있다. 한꺼번에 모든 섬을 청정 섬으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우선 외지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청산도에서 시범적으로 도입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더딘 삶을 잘 보전해오고 있어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된 청산도에 어울리는 교통수단은 최신 승용차가 아니라 전기자동차나 꽃마차, 자전거가 아닐까?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바다와 옛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길, 짜투리 땅을 활용한 구들장논 등을 만날 수 있는 11개 구간 42㎞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슬로길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자동차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보다는 천천히 걸어 다니는 것이 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불가피하게 짐을 옮기거나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을 위한 교통수단으로는 공기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전기자동차를 차근차근 보급하는 것도 슬로시티 청산도를 오랫동안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오는 4월 1일부터 한 달 동안 청산도에서는 ‘슬로걷기 축제’가 열린다. 꽃마차나 전기자동차를 타거나 천천히 걸으면서 섬 한 바퀴 돌면서 삶의 쉼표가 되는 청산도의 아름다움에 취해보는 그날을 기다린다.

저작권자 © 완도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