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창(어촌민속전시관장)

 

아침 출근길에 현관문을 열고 나와 화단을 보니 수선화 줄기에 꽃망울이 맺혀 있다. 갖가지 화초들을 집 주변의 이곳저곳에 심어두었지만 어디에 뭐가 자라고 있는지 잊고 지내고 있는 무심한 주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봄 인사를 한다.

아파트 생활을 접고 시골생활을 시작한지가 어느덧 일곱 해가 지났다. 현관문만 닫아버리면 바깥세상과 단절되는 아파트와는 달리 사방이 뻥 뚫려있는 단독주택에서의 생활은 많은 것이 다르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바삐 사는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을 고려한다면 아파트 생활이 훨씬 더 편리하다는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러모로 불편한 시골생활을 택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얽힌 사연이 있다.

그해 겨울 흙먼지가 허공에 맴돌던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집 한 채만 들어선 곳으로 이삿짐을 옮긴지가 엊그제 같다. 그 때 심은 손가락 굵기의 묘목이 팔뚝보다 더 굵어진 것을 보면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할 수 있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얻어다 마당에 심은 갖가지 나무와 꽃들이 제 각각 철따라 자태를 뽐내는 모습을 보면서 살포시 미소를 짓게 된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시골생활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물어보나마나 당연히 아파트 생활보다 힘들다. 그것도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힘들다. 하지만 힘든 것도 마음먹기에 따라 받아 넘길 수 있는 일이라는 편안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지인들이 걱정한 만큼 시골생활이 어렵지는 않다.

오히려 아파트 생활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집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영롱하게 수놓은 별들을 올려다보면서 시원하게 오줌 줄기를 정원에 싸갈기면서 쾌감을 느끼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은 나무들에게 영양가 많은 거름을 주는 거룩한 일이라고 혼자서 떠벌이면서 말이다. 왜 하필 그거냐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 맛을 제대로 알고 맛보고 싶으면 시골로 이사오라고…

지금도 아내는 많은 동물들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사료비를 대는 일이 부담이 되고, 그들이 아무데나 싸놓은 배설물을 치우는 일이 늘 즐겁지만은 않으니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불편으로 인한 반대를 짐짓 모른 체하고 여러 친구들을 거느리고 대장 노릇을 하는 것은 남들이 모르는 즐거움이 있어서다.

내 친구들 중 우선 여섯 마리의 견공들을 소개한다. 시골에 정착할 때 함께 이사 온 두 마리의 진돗개와 그 후 입양한 흑구 한 마리, 지난해 말에 태어난 두 마리의 강아지, 유일하게 방안에서 함께 지내는 말티즈 한 마리가 그들이다.

다음은 두 마리의 길고양이다. 어느 날 초라한 행색으로 현관문 앞에서 우는 고양이 한 마리가 불쌍해 보여 먹이를 줬더니 그 뒤로는 때만 되면 나타나 밥을 달라고 칭얼댄다. 그런지가 어느덧 삼 년이 지났고, 대를 이어 삼 대가 집을 떠나기도 하고 남아있는 녀석은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다 끼니때가 되면 내게 밥을 얻어먹고 있다.

집 뒤쪽의 닭장에는 지난 가을에 데려온 열다섯 마리의 닭들이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다. 여러 동물들 중 유일하게 대장에게 밥값을 내는 녀석들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얼마 전부터 몇 마리는 알을 낳기 시작해서 모이를 주고 알을 주워오는 쏠쏠한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아마도 날씨가 더 따뜻해지면 꽤 많은 유정란을 이웃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 친구들 때문에 나의 하루는 일찍 일어나 바삐 움직여야만 한다. 내가 늦잠을 자고 게으름을 피우다 미처 밥을 주지 못하고 출근하면 하루 종일 쫄쫄 굶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차마 시골생활 동반자로서의 의리를 지킨다면 그럴 수가 없다. 더구나 며칠 집을 비울 일이 생기면 이 녀석들의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고민이 생기기도 한다.

동네 끝 바람막이가 없는 허허벌판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기온이 2~3도쯤 낮아 꽃이 늦게 피고 봄이 더디게 온다. 오래 전부터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 살구나무는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고, 다른 집에는 만발해 있는 매화도 며칠 전부터 하나 둘 피기 시작한다. 더디기는 하지만 때가 되니 어김없이 봄은 가까이 다가서 있다.

휴일이 되면 지난해 사서 충분히 삭혀놓은 거름을 나무들에게 골고루 나눠 먹여야 한다. 나무나 꽃들은 관심을 갖고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면 그만큼 자신들이 갖고 있는 나름의 아름다움을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주는 만큼 되돌려 받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자 순리라는 것을 그들은 일깨워 준다.

찬란한 봄의 향연에 동참하기 위해 다음 장날에는 봄에 어울리는 꽃 화분 몇 개를 사와 봄단장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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