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종(군외면 달도리)

산마루에 걸친 해가 쏟아낸 붉은 빛은 서쪽 하늘을 온통 물들이며 저물어 가고 동네 뉘 집에선가는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꿰매 입은 도포입고 색 바랜 삿갓 쓴 스님이 산길을 오릅니다.

바랑을 등에 매고 석양빛을 받으면서 오르는 모습은 마치 한복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지만 늘상 봐오는 우리에게는 그냥 그렇게만 보일뿐입니다. 바랑 매고 매일처럼 산길을 오르는 스님이 젊은 시절 암자에 오셔서 고희를 맞았다니 수십 년은 된 성 싶습니다.

오랫동안 자주 마주치던 스님을 시주승이라 부르기도 하고 점잖게는 노스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언제 보아도 스님은 환하게 웃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화내지도 않습니다. 꼬마 녀석들이 “중 중 때깔중”하고 소리치고 도망가도 그냥 바라보시면서 웃기만 하십니다. 정녕 중은 중인가 봅니다.

스님은 언제나 해질녘이면 어김없이 이 산길을 오릅니다. 스님이 매고 있는 바랑은 작지만 무거워 보입니다. 아침 일찍 절집에서 내려와 목탁을 두드리며 수십 집을 드나들며 시주받은 쌀들이 한두 줌씩 모여져 바랑을 채워 질 때까지 스님은 “남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수천 번을 외웠을 것입니다. 바랑이 채워지고 해질 무렵이 되면 스님은 또 산길을 오릅니다.

산중턱의 암자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예불 종소리가 골짜기에 은은히 울려 퍼지고 어두움이 깔리기 시작하지만 스님은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산길을 오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수없이 오르내렸던 경험으로 익숙해진 탓일까요. 마을에는 스님이 달리는 모습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답니다.

비가와도 눈이 내려도 스님은 달리지도 않고 아무리 힘들어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습니다. 내일도 모래도 똑같은 마음 일 것입니다. 새벽예불 드리고 아침공양 일찍 마친 다음 바랑을 등에 매고 산을 내려와 “남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우면서 목탁을 두드리며 수많은 중생을 만나 바랑을 채우고 해가 질 무렵 어느 때와 똑같이 산길을 오르겠지요,

스님, 건강하시어 오래 오래 이 산길을 오르십시오. 그리고 많은 중생들의 복을 빌어주시고요. 스님은 오래도록 이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온갖 중생들의 근심 고통을 잊게 소원하실 것입니다. 스님은 열반하시는 그날까지 인자하신 그 모습 변함없이 이 산길을 오르실 것입니다. 남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수도 없이 외우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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