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창(어촌민속전시관장)

 

장좌리 해변에 가면 매생이도 아닌 것이 파래도 아닌 것이 차디 찬 겨울바다의 물이 빠져나가고 황량한 갯벌이 드러나면 초록빛 잔디밭이 펼쳐진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썰물에 갯벌이 민낯을 드러내는 얕은 바닷가에서 겨울철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의 주인공인 ‘가시파래’라는 이름의 바닷말을 우리 지역을 포함한 전라도 지방에서는 ‘감태(甘苔)’라고 부른다.

남해안에서 감태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채취방법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채취할 때 실 뭉치를 감듯 돌돌 감아 채취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감태는 굵기가 매생이 보다 굵고 파래보다는 가늘며, 녹색이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감태는 갯벌이 있는 서해안과 남해안 일대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완도읍 장좌리, 고금면 내동리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귀한 해조류다.

일조량이 많고 갯벌의 환경이 건강해야 맛있는 감태를 생산할 수 있는데, 요즘 들어서는 지구 기후변화와 해양오염·무분별한 간척사업으로 인한 갯벌 감소 등으로 서식환경이 바뀌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채취시기가 겨울이라 매서운 추위와 싸워 이기면서 채취를 해야 하고, 채취 도구라고 해봐야 방수복·장화·장갑 따위가 전부로 채취과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힘든 작업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감태의 채취를 논밭에서 풀을 매는 것처럼 ‘감태 맨다’라고 하는데, 감태를 매는 방법은 뿌리는 남기고 끄트머리만 거둬 올려야 하는 단순하지만 손수 해야만 하는 예민한 작업으로, 고령화가 심각하여 노동력을 구하기 힘든 어촌지역에서는 점차 채취가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획일화된 음식문화를 지양하고 고유의 음식을 지키는 운동을 하고 있는 슬로푸드 완도지부에서는 ‘감태지’를 지난해 슬로푸드 국제협회의 ‘맛의 방주(Ark of Taste)' 프로그램에 신청하여 등재되었다. 슬로푸드운동은 ‘맛의 방주’ 프로젝트를 통해 사라지고 있는 지역의 품종, 음식, 음식문화를 지키고자 하고 있는데, 선정 기준은 1. 특징적인 맛을 가지고 있을 것, 2. 특정 지역의 환경ㆍ사회ㆍ경제ㆍ역사와 연결되어 있을 것, 3.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어야 할 것, 4. 전통적 방식으로 생산될 것 등이다.

엽록소가 풍부한 감태는 화학적 구조가 혈액의 헤모글로빈(hemoglobin)과 아주 비슷하고, 기능도 비슷하여 피를 만들어내는 조혈기능이 아주 좋은 바닷말이다. 세포에 산소 등 영양분을 공급해줘 원활한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주고, 혈액 속에 축적되어 있는 독소를 정화해 줌으로써 혈액의 클렌저(cleanser, 세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체내의 노화 및 질병을 유발하는 활성산소를 중화시키는 기능, 염증을 억제하는 기능, 정상세포가 돌연변이 되어 암세포로 변하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 강력한 항산화 및 항염증 활성 등 질병을 예방하고 일부 치료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아주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 요리에서는 말린 감태를 믹서기에 갈아 가루로 만들어 음식에 뿌려 색을 내고, 향을 더하는 보조 재료로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감태지’는 1~2월에 완도 지역에서만 담가 먹는 대표적인 겨울 김치의 한 종류로, 감태를 소금과 절인 고추만을 이용하여 담가 먹는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다.

담그는 방법은 갯벌에서 채취한 감태를 바로 바닷물과 민물로 두 차례 헹궈낸 후에, 소금으로 간을 맞춰 미리 절여놓은 고추를 송송 썰어 넣고 무치면 되는데, 신선할 때 바로 무쳐 먹어야 제 맛이 난다. 3월 이후에는 잎이 빳빳해져 부드러운 맛이 덜해지므로 감태지로 먹기보다는 말려먹는 것이 좋다.

이번 겨울에는 감태가 한창 자라날 시기에 한파가 몰려와 바닷물이 하얗게 얼어 감태가 모조리 뿌리까지 쓸려가는 바람에 채취량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입맛이 조금은 쓴듯하면서도 갯내음이 물신 풍기는 바다의 겨울채소인 감태지의 오묘한 맛이 한층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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