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수 완도군 보건의료원장

 

올해 1월 담뱃값이 인상된 이후,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작년 40.8%에서 5.8% 포인트 떨어진 35.0%인 것으로 질병관리본부가 지난 7월 15일 보도하였다. 성인 남성 흡연율이 1년 전에 비해 약 6% 떨어지고 금연 열풍으로 보건기관의 금연클리닉 이용자가 두 배 늘었다고 한다. 분명히 가시적인 효과가 있다.

이러한 강력한 유인책으로도 건강을 위해 금연은 해야 한다. 담배는 각종 유해물질로 인해 뇌졸중 또는 심근경색의 심·뇌혈관계 질환, 만성폐쇄성폐질환, 췌장암과 폐암 등 각종 암의 발암물질이다. 이렇게 해로움을 잘 알면서도 끊기 어려운 것은 중독성을 가지는 담배의 니코틴 성분 때문이다.

담배와 니코틴의 어원을 보면 재미있고 역설적이다. 담배는 포르투갈어인 ‘토바코(Tobaco)’가 일본에서 ‘다바코’로 불리다가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담바구’, ‘담배’ 로 변하였다. 니코틴은 프랑스 외교관이자 포르투갈 대사였던 장 니콧(Jean Nicot 1503~1600)이 종기나 화상 등에 담뱃잎 즙이 효능이 있다며 그 성분을 자신의 이름을 따 ‘니코틴(Nicotine)'이라 명명하였다.

담배의 역사를 살펴보면 더욱 흥미롭다. ‘토바코’라는 식물은 약 4000년 전 종교의식에 쓸 목적으로 중미의 마야인들이 처음으로 재배하였고, 그 후 아메리카 대륙으로 퍼져 나가 인디언들에게도 전해진다. 1492년 신대륙 발견을 위해 에스파냐 팔로스 항구를 떠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바하마제도를 거쳐 쿠바에 도착한다. 쿠바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원주민으로부터 처음 담배를 접하고는, 그것을 신비롭게 여겨 유럽에 전하게 된다. 이후 동아시아에도 퍼지게 되는데, 일본은 1570년 전후로 들여오게 된다.

우리나라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으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지난 1592년 임진왜란 이후 담배가 들어온다. 일본의 연초 문헌의 권위자인 ‘오스키 겐타쿠’와 영국인 ‘사토’가 쓴 「연초기」에는1592년 임진왜란을 통하여 전해졌다고 한다. 다른 시기로 주장하는 기록을 보면 「조선왕조실록 1638(인조 16년) 8월4일」과 조선 인조때 ‘장유’의 저서인 「계곡만필」에는 조선의 15대 왕인 광해군 초기 1616~1618년에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공통적으로 임진왜란 이후 담배가 들어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진왜란, 광해군 이후를 보면 22대 왕 정조(1752~1800년)는 시문집 「홍재전서」권52책문5에서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남령초(담배)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 등 애연가로 전 국민에게 담배를 권하였다. 그 때는 평민, 기생, 양반, 궁녀, 임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흡연을 즐겼다고 전한다. 당시 총인구가 약 1,5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흡연율이 최소 25%(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 추정)로 2013년 대한민국 전체 흡연율 25%(통계청 2013 한국의 사회지표)와 같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가져온 담배의 니코틴이 조선을 덮어 지배한 것이다.

니코틴은 1492년 신대륙 발견 이후 인류를 지배했고, 정확히 100년이 지난 1592년 임진왜란 이후 조선을 지배했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총과 칼로 조선을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담배를 들여와 지금까지 니코틴에 지배당하게 하여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흡연은 가슴 아픈 우리 역사이기도 하다. 올해 8월15일은 광복 70주년 되는 해이다. 그러나 담배로부터는 아직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담배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건강을 위해서 금연하면 더 뜻 깊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젠 니코틴으로부터 해방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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