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語)은 변화한다. 말은 곧 당대의 생활과 사상, 문화 조류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쓰이고 또 해석되며, 다른 의미를 가진 말이 함께 섞여 사용돼 후대의 연구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는 완도(莞島)의 지명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일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하다.

완도의 지명은 몇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먼저 초목이 무성하여 왕골이 우거진 것과 같다 하여서 왕골 완(莞) 자를 써서 완도라 했다는 것과 산림이 울창해서 궁권 재목을 생산하는 국원(國苑)이라 해서 원도(苑島)로 불리다가 후에 다시 완도라고 바뀌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해석은 청해진이 해체된 이후 벽골군으로 강제 이주된 유민들이 고향을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섬이라 해서 ‘빙그레 웃을 완(莞)’ 자를 써서 완도라 했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기록인 삼국사기에서도 완도를 조음섬(助音島: 좋은섬)이라 적고 있다. 최근에는 완도군을 비롯한 지역 내 행정기관에서 이 세 가지 중 마지막 해석을 따라서 완도를 ‘빙그레 웃는 섬’으로 널리 홍보하고 있다.

후기 철기시대인 삼한시대부터 마한땅 50개 영지 중 하나였던 완도. 백제시대에는 고금면을 비롯한 신지, 약산은 동음현에 속하고 금일과 금당, 생일은 조차현에 속했으며, 완도읍과 소안, 노화, 보길은 색금현에 속했던 완도가 ‘좋은섬’이었거나 ‘빙그레 웃을만한 섬’이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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