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자 언론인 전 광남일보편집국장. '보길도기행'여행기를 계기로 보길도에 들어와 비파원 팬션운영.
김원자 언론인 전 광남일보편집국장. '보길도기행'여행기를 계기로 보길도에 들어와 비파원 팬션운영.

  오랫만에 보길도에 갔다. 보길도를 떠나 광주에 온 지 1년 반만이다. 당연히 못보던 건물도 새로 생기고, 면장이 바뀔때마다 보이는 주변의 변화도 느낄 수 있었다.

   보길도는 전복양식이 번성한 이후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고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섬'으로 알려져 있다. 연로한 부모들의 뒤를 이어 전복양식에 투입되는 자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친구집 아랫동네에 또 하나의 돌아온 젊은이가 있었다. 서울에서 웨딩플래너로 일했다는 애 엄마와 아들이 함께였다. 그런데 그 집은 전복양식을 하는 집이 아니란다. 늙으신 어머니 한분이 홀로 집을 지키고 계시던 고향으로 젊은이가 돌아왔다.

   그는 대학에서 전산학과를 나온 잘 나가던 IT전문가. 그런데 젊은이는 가족과 함께 이제는 수명이 다한 영국제 중고 캐러밴 한대를 가져 왔다. 차의 몰골을 보니 끌고올 수는 없었을 것 같고 무언가에 화물로 실려왔을 것이다. 한때는 영국일대를 누비던 캠핑카였을 중고캐러밴은 구르지만 못할 뿐이지 내부는 그런대로 갖춰져 있었고 냉장고도 빵빵히 돌아간다고 한다.

   관광지로 이어진 도로변은 아니지만 집앞마당에 놓인 캐러밴은 이제 카페가 되었다. 내부를 약간 수리해 소파2개와 테이블이 갖춰 놓으니 어엿한 카페다. 이름도 지어 작은 나무간판을 걸었다. '카페 보길씨'. 처음엔 보길도에 존칭으로 씨자를 붙였나했는데 바다를 의미하는 영어 ''라고 한다 도시에 나가 살면서도 고향 보길도바다를 늘 그리워했을 젊은이의 마음이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딱 두개 놓인 소파에 앉으면 바로 보길도 선창리 앞바다가 비치고 바다너머로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도 감상할 수 있다. 이 좁은 공간에 얼마나 손님이 찾아오는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젊은이의 커피내리는 실력과 고향사랑이 합쳐진다면 곧 소문이 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보길씨 카페의 젊은 주인장에게 '손님이 많이 오세요?" 따위의 질문은 어쩐지 실례가 될 것만 같다. 그가 꼭 돈을 벌기 위해 카페를 차렸을까? 아닐 것이다. 이웃인 친구의 말로는 코로나때문에 어려워진 회사의 인사정책으로 1년간 휴직을 받아 잠시 고향에 쉬러 온 것이라 하는데...

보길씨카페의 인스타그램에는 IT와 사진전문가답게 보길도의 주변풍경과 동네사람들의 이야기가 멋지게 실려있다. 보길도의 신 인문지도가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한때 전복양식의 호황으로 돌아오는 섬이된 보길도가 코로나때문에 제2의 귀향바람이 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코로나귀향은 반대한다.

미국 뉴욕에서도 맨하탄을 벗어나 시골에 집을 사서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코로나로 돌아오는 섬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코로나가 멈춰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시심을 찾는 관광객으로 넘치고 사람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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