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슬로길 (6코스) 5.1km, 소요시간 82분

 식구 많고 가난한 집의 보릿고개는 길고 긴 겨울보다 더 혹독하다.
한 해 식량은 봄 오기 전에 이미 다 떨어졌고 밀가루나 옥수수가루 죽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춘분이 지나고 연한 새쑥이 나오면 쑥개떡을 만들어 일할 때 새참으로 먹었다. 히물그래한 죽만 먹다가 쑥개떡을 먹으면 입에 씹히는 식감과 포만감이 있어 그래도 먹고나면 지게가 가볍게 느껴진다.

 이렇게 몇 달을 버티면 보리가 누릿 누릿 익어간다. 토실 토실 살오른 보리 모가지만 따다가 짚불 피워 그 속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 손바닥으로 비비면 몰랑 몰랑한 초록색 보리알이 시꺼먼 잿속에서 반짝거린다. 입안에 한 입 털어 깨물면 톡톡  터지며 입안에 느껴오는 그 맛은 지독하게도 가난한 사람들만이 느끼는 특별하고 독특한 맛이었다.

 비탈진 산을 깍아 돌을 채우고 지게 바작에 흙을 져다가 논 일을 할 때에도 보리개떡이 유일한 새참이었다, 먹고 뒤돌아서면 언제 먹었냐는 듯 허기지지만 그래도 끼니 때마다 굶지 않고 뭐라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굶어 부황 들었던 사람도 보릿고개만 넘기면 살 수 있었다.

 농로를 따라 어릴 적 가난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걷다보면 부흥리 숭모사가 나온다.

“청산도에서 글 자랑 하지 마라!”
청산도에서 똥장군을 지는 사람도 한시(漢詩) 한 두 소절은 읊조릴 수 있다는 소리에서 청산도에서는 버선까지 팔아서라도 배움에 정진한다는 소리가 나오게 된 배경이 된 것이 바로 청산도 부흥리 숭모사에 배향되신 귤은 김류 선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수 거문도(巨文島)의 이름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지만 완도 청산도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그대로 청산에 살면서 주민들을 계몽 교화하시면서 일생을 마치셨다.

 호남의 노사 기정진 선생의 후학으로 당대 성리학 이론가이었지만 관직을 바라지 않고 청산에서 주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지역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또한 얼마나 뜻 깊은 말인가? ‘청산에서 글자랑 하지 마라’는 말이...

 나도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귤은 김류선생의 제자가 됐을까?
천만의 만만의 콩떡이다, 옛날에 글렀으니 행여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마라!
글공부는 양반들이나 선비 될 사람들이 하는겨!

 6코스는 9개 마을이 있고 주민들은 주로 농사일을 한다,
 청산도에서는 이곳을 동부라고 하고 동부에서 농사를 지어 과거 인구 1만 2천여 명이 먹고 살았다고 한다, 이 일대의 논은 하단에 통수로가 있는데 2013년에 시굴 조사를 해보니 바닥에 돌을 쌓고 그 위에 흙을 채워 농사를 지었고 통수로는 아궁이 모형이었으며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현대 과학으로로 풀 수 없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논을 귀히 여겨 ‘구들장논’으로 이름지어 2014년 유네스코 세계농업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렇듯 청산도 슬로길은 코스마다 재미난 이야기와 역사 그리고 문화가 숨쉬고 있다. 살짝만 건드려도 300~400년 전의 일들이 되살아난다, 천천히 걸으면서 조목조목 살펴볼 일이다. /김광섭 향토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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