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심는 날 / 유 은 희

 

떠듬떠듬 한글을 배워 쓰던 숙모들

무논을 펼쳐 들었네

발목을 구름 뒤로 옮겨 심으며

꾹, 꾹, 생을 적어갔네

바보삼촌과 아버지는 중천에서

한 문장씩 밑줄을 그었네

돌림노래 무성한 논두렁에서

노란 주전자처럼 갸웃해진 나는 초경을 맞았네

동백아가씨에서 여자의 일생까지

숙모들은 눈물과 웃음을 반반 잡아 썼네

손으로 쓱쓱 발자국을 지워내며

뒷걸음질 칠 때마다 해는 점점 닳았네

애써 팽팽하던 못줄도

목이 메인 이별가에서 그만 출렁, 했네

논머리까지 치밀어 온 바다는

목울음만한 노을을 삼켜들었네

못줄 밖으로 밀려 쓴 숙모들의 이야기가

하늘 한 배미를 붉게 물들였네

거머리 같은 가난을 품앗이하고

산허리 한 짐씩 업고 저물었네

굽은 등에서 폐경의 바람이 일었네

가 갸 거 겨 고 교

어린 개구리들 밤새 논을 따라 읽었네

숙모들 지붕위로 한 움큼의 별들이

볍씨처럼 흩뿌려지고 있었네.

 

-완도군 청산면 도락리 출생

-원광대학교 인문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국제해운문학상 대상 수상 외

-시집 <도시는 지금 세일 중> 외

-인문라이브러리. 문예창작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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