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복산업 오늘을 펼친 장본인

“발이 닳도록 뛰어 다녔습니다. 전복종자보급소 해남으로 빼앗긴 것 못내 아쉬워 앞으로 우리 전복산업이 국내외적으로 더욱 인정받고, 가장 경쟁력있는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새로 취임한 오 회장을 중심으로 회원들이 단합하여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달 3일 퇴임한 이승열 전 (사)한국전복산업연합회장은 2013년부터 (사)한국전복산업연합회 제2대, 3대 회장으로 6년간 재임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전복산업이 연생산량 2만톤 시대로 도약하는데 선봉에 서서 헌신 봉사해 온 장본인이다.

“전국의 전복산업은 그동안 많은 발전을 해왔습니다. 생산과 유통량이 급증하면서 양식어가들의 소득도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국내 소비량과 수출도 현저히 늘었습니다. 특히 완도는 전국 전복 생산량의 75%, 약 1만6천500톤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회장 초임 때 열심히 뛰었습니다. 전복양식업 활성화와 기술개발, 종자보급, 유통 활성화를 위해 연구소, 정부기관 등을 방문하느라 서울까지 발이 닳도록 돌아다녔어요.”

그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열성적으로 뛰어다녔던 원동력은 완도군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완도군이 전복산업에 대해서 만큼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러한 지원에 힘입어 홍보‧판촉활동, 정부지원금 유치 활동도 활발하게 펼칠 수 있었습니다.”

힘이 부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가 믿었던 신념은 “모든 일은 노력한 만큼 성과가 따른다”는 것이었다.

연합회 회장 재임 중 힘들었던 일은 “자조금을 거출하는데 어려움이 많더군요. 국도비 지원액에 비례해서 목표액은 정해져 있는데 회원들이 소극적으로 참여해 애로가 많았습니다.”

전복산업 발전에 기여한 그가 이뤄낸 혁혁한 공적을 인정받아 그는 대통령 표창과 은탑산업훈장, 국무총리 표창, 각종 공로패를 수상했다. 그러나 그에게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전복 종자보급소를 해남군에 빼앗겨 버린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심사에서 우리 완도군이 모든 면에서 경쟁력 우위에 있었는데... 갑자기 순위가 뒤바뀌어 버렸어요.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전 회장은 현재 청산도에서 전복양식업과 유통업을 직접 경영하는 어가이다. 또 청산면 번영회를 창립한 장본인이면서 초대 번영회장을 지냈다. 완도읍이 고향인 이 회장이 타지 번영회장을 맡아 내 고향처럼 열심히 일했다. 지역발전을 위하는 일인데 조금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고향도 아닌데 어떻게?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어디가 됐건 지금 내가 사는 곳이 고향인 것이죠.”

청산면 번영회장 시절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청산항 개발사업’ 국비 670억원을 유치했던 일이다.

한편, 이 전 회장은 청산도 전복 양식업의 선구자 이기도 하다. 1980년대 가두리 시설도 없고 치패구하기도 어렵던 시절, 그는 채롱을 이용해 전복 양식을 시작했다. 수년 후 가로 세로 1m 짜리 나무로 만든 가두리 30칸을 바다에 띄우자, 주민들이 이를 보고 모두 웃었다. “2년이 지나자 주민들이 하나 둘씩 따라 하더군요” 그가 가두리 양식을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현재 그는 가두리 1,200칸을 소유한 어가다.

전임 회장으로서 전복 양식어가들과 연합회 회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했다. 그는 “전복산업 발전과 지역발전을 위해서 어민들, 연합회 회원들은 협회가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단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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