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천(완도읍)

 

두어 달 전쯤 군외면 황진리 해변 길을 지나는데 군도에 접한 야산의 한 자락이 수목 한 그루 없는 민둥산으로 변해 있었다. 태양광발전소를 짓기 위해 수목을 제거했다고 한다. 신지면 양지리의 태양광발전소 건립 건도 그렇고, 전국의 산야를 휩쓸고 있는 태양광발전소 건립 붐이 이제 완도까지 이르러 자연경관을 파괴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지면 월양리 작살기미에 풍력발전소가 들어선다고 한다. 발전회사 등을 상대로 발전량의 일정비율을 신ㆍ재생 에너지로 충당하도록 하는 의무할당제(RPS)가 전국의 경관을 갉아먹더니, 이제 “관광완도”의 인프라인 자연경관도 본격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오직 기업 이익의 극대화을 추구하는 발전회사들이 의무할당을 달성하기 위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투자로 위장하고서 순박한 지역민심과 투명하지 않는 지역행정을 파고드는 것 같다.

15년 전 네덜란드 북부 간척지의 밀밭 지대에서 가랑비가 내리는 날 목도한,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생각난다. 윅윅 쉑쉑, 바람을 가르는 거대한 날개의 소음은 50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들어도 무시무시했다. 작살기미의 경우, 강원도 대관령에 세워진 것들과 비슷한 타워높이 70-80m, 날개직경 80-86m, 전체 높이 100-120m의 규모로서 당시 네덜란드의 것들보다 2배 이상일 것 같다.

국내에서 풍력발전기의 소음 피해와 경관 훼손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는 곳은 대관령과 제주도이다. 대관령에는 날개가 수직을 이룰 경우 높이 120m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 백두대간의 허리를 뒤덮고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리고 있다. 날개는 분당 30회씩 회전하면서 붕붕 굉음을 낸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 풍력단지에 설치된 높이 100여m의 풍력발전기들은 주변의 아름다운 “오름”을 가리고, 직선거리로 600여m 떨어진 성읍민속마을의 경관을 망가뜨리고 있다. 마을 주민은 “밤중에는 날개 돌아가는 소리가 마을까지 들려 신경이 쓰인다”고 말한다.

대관령의 풍력발전기 날개가 회전할 때 주는 공포감을 언급하는 관광객도 많지만, 작살기미의 경우도 예상되는 규모로 보아 소음 공해와 공포감은 상상 이상일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사업예정지 인근 주민이나 신지면민은 이러한 정보를 거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군청의 사업승인까지 난 현재, 사업예정지에서 가장 가까운 동촌리 주민은 이 사업에 대해 공식적으로 전혀 들은 바가 없다고 한다.

소음공해도 큰 문제이지만, 작살기미 풍력발전소 건립의 더욱 큰 부작용은 경관 파괴와 관련된 것이다.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작살기미는 우리 군에서 자동차로 접근할 수 있는 지역 중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매년 새해 아침에는 전국에서 알음알이로 일출 탐방객들이 모여든다.

어떤 인공 건조물이 시야를 가리지 않으면서, 가까이 그리고 멀리에 오밀조밀하고 예쁜 섬들이 보이고 그 사이로 일망무제의 녹청색 바다를 볼 수 있는, 정말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곳이기 때문에 일출은 더욱 아름답다. 그러나 높이 100-120여m의 위압적인 인공 건조물들은 개인회사를 위해 연간 4인 가구 몇 천 세대분의 전기를 생산하면서, 앞으로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이 아름다운 힐링(치유) 공간을 영원히 날려버릴 것이다.

인간은 현저한 인공물이 가리지 않는 온전한 자연을 마주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을 느낀다. 서울·경기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전역은 난개발로 온전한 산야, 골짜기, 해변이 드물다. 그래서 사람들이 온전한 자연 경관을 만끽할 만한 공간은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온전한 자연 경관이 관광산업의 경쟁력이다. 그러니 작살기미와 같은 자연 경관을 보존해야 한다.

완도군 민선6기 공약사항 4개 부문 중 두 번째는 “관광완도”이고, 세부적인 공약사업은 ①해양레저 거점마을 조성, ②보길도 어부사시사길 조성, ③슬로시티 청산도 에코뮤지엄 조성, ④원교 이광사 문화 컨텐츠 개발, ⑤완도군 관광마케팅 통합시스템구축, ⑥문화·예술분야 지원 강화, ⑦완도수목원 생태․체험 학습장 조성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전임군수 때부터 이어지는 사업이 다수 포함된 이 관광사업들은, 현재의 준엄한 내외적 도전을 타파해야할 “관광완도”의 정책으로는 매우 빈약해 보인다. 한편, 1991년 지방자치의 부활 이래 유동인구를 끌어들이기 위한 관광개발은, 전국의 지자체들 간에 사활을 건 경쟁이 된 지 오래이다.

그래서 위 공약사항과 같은 사업내용은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들이 이미 해온 것들이다. 다른 지자체와 비슷한 사업이라면 반도의 끝, 완도까지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는 경쟁력은 별로 없어 보인다. 완도만의 특색을 보여줄 수 있는 뭔가의 한 방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도 이전에 완도 관광의 인프라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전에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유럽·북미를 여행하다 보면, 몇몇 큰 사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우, 별 것 아닌 테마, 초라할 정도의 규모의 박물관들로도 관광객을 잘 끌어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그것이 가능한 것은 수백 년에 걸쳐서 가꾸고 보호해 온 경관이 관광지의 인프라로서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산과 들, 마을과 도시가 서로 잘 어울리고 아름답기 때문에, 사실상 거기에 어떤 테마나 별 것 아닌 박물관 하나 가져다 놓아도 사람들이 오는 것이다. 절대로 단지 그 테마나 박물관 하나 때문에 오거나, 와서 감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오래 전부터 경쟁력 있는 관광시설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경관임을 강조하는 한편, 완도 경관의 관리와 개발에 최적화된 경관 조례의 제정과 엄격한 시행을 주장해왔다.

③번 공약사업인 “슬로시티 청산도 에코뮤지엄 조성”이 또 무엇을 ‘건설’하고 ‘건축’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청산도를 예로 들어보자.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청산도를 가본 군민이 있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육지 사람들이 몰려오는 청산도에 정말 대단한 경치가 있고 볼거리가 있는가? 적어도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별로 특별한 것은 없다.

신지도 작살기미나 통영시에 있는 예쁜 섬들, 신지 명사십리 같은 좋은 해수욕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완도 체도의 오봉산 같은 멋진 산도 없다. 그저 우리나라 1960-70년대의 고즈넉한 시골 농어촌 풍경, 즉 돌담과 골목, 논밭, 모래밭 해변, 나무도 별로 없는 돌산이 있을 뿐이다.

전에 필자가 청산도의 인기의 근원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겨우 한 가지 발견한 것은, 청산도에는 경지정리된 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군집행부와 주민들은 연간 수십만이 찾는 청산도를 자랑하면서도, 기회만 있으면 뭔가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시설을 짓고 도로를 뚫고 마을길을 콘크리트로 덮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래서 청산도에 들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섬의 특징을 살리면 관광객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고 충고하였다.

이제 완도군 전체로 시선을 돌려보자. 완도군의 각 지역에 유럽이나 북미, 남미, 중국 등의 보기에 숨 막히는 장대하고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가? 우리나라 다른 남해안이나 서해안, 동해안의 경치를 능가하는 특별한 무엇이 있는가? 필자는 결코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렇게 특별하게 빼어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완도를, 청산도를, 신지도를 방문하는 외부인들은 그저 소박하고 시골스러운 완도만의 풍경에서 힐링(치유)을 만끽하고 산소음이온을 호흡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소박한 완도의 풍경, 완도만이 팔 수 있는 힐링의 경관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줄기차게 파괴해 왔다.

필자가 보기에 완도군청에는 경관 문제와 관련하여 정말 바람직한 조례와 부서와 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완도군 경관 조례”와 지역경제과의 “경관관리팀”, 그리고 각 읍면의 “『좋은 경관 만들기』팀”이다. 이 좋은 체계를 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 경관 조례에 따르면, “군과 완도군민은 경관이 자연, 역사, 문화와 주민생활, 경제활동 등과의 조화를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경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발과 건축물 신축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군수는 경관을 해치거나, 향후 경관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개발행위를 하는 자에게 훼손행위 중지와 주변경관과 조화로운 개발행위를 하도록 적극 권장하여야” 하고, “경관계획을 수립하거나 시행을 할 때에는 군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군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그래서 “군수는 각종 개발행위 인·허가 시 경관관리계획 내용이 반영되도록 하여야 한다.”

다만, 경관 조례의 시행규칙은 시급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긴급한 것은 완도항 일원의 경관을 보존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의 마련이다. 경관조례를 통해 완도항 주변의 건물, 특히 아파트의 높이를 규제해야 한다. 이 아담한 항구에 20층 이상의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큰 문제이다. 늦었지만, 완도관광호텔 쪽 한두 군데 건립하는 것으로 그치게 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완도항을 상징하는 천연기념물 28호인 주도 주변의 건물은 현재의 높이를 넘어서지 않도록 제한해야 한다. 바로 이 순간에도 사업자들이 주도 바로 옆(1부두)이나 앞에 고층 아파트를 건축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경관 조례를 통해 더 이상의 매립도 규제해야 한다. 해안선이 원형대로 남아 있다면 정말 뛰어나게 아름다웠을 주도 주변 바다가 경관개념이 없는 매립으로 인해 ‘둠벙’처럼 변해버렸다. 장기적으로는 치밀한 조사와 용역연구를 통해, 완도항의 경관에 가장 어울리는 건물의 외형, 높이, 색깔까지도 도출해 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한, 자연경관의 관리에 대해서도 우리 군 나름의 적절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군청 경관관리팀은 관내의 주목할 만한 모든 경관에 대해 경관적 장점과 특징을 등급화 하여 모든 개발·이용 행위에 대해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완도 체도에서 바다 전망이 가장 뛰어나고 겨울 기온이 따뜻하며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를 “완도 폐기물 종합처리장”으로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일, 그리고 황진리·양지리·작살기미의 사례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경관은 “관광완도”의 인프라이다. 경관이 곧 완도 군민 전체의 돈이다. 완도의 발전을 위한 큰 포부를 가진 6기 군수가 “관광완도”의 인프라인 경관에 대해서도 미래에 길이 남을 비전을 갖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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