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사적 114호로 지정

 

고금면 충무리에 소재한 묘당도(廟堂島)는 섬 아닌 섬이다. 동쪽 바다 쪽으로는 조약도 넙고리와 서쪽 고금도 세동리 구세들 사이에 앉은 이 섬은 그 시기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전 바다가 메워져 고금도와 하나가 됐다. 그래서 오늘의 묘당도는 독립된 섬이 아니라 고금면 충무리로 존재한다.

당시 이 들판은 수군들의 식량을 해결하는 목숨 같은 땅이었을 터다. 기록에 따르면 인근에는 거주민들도 1천500호에 달해 6~7천 명의 백성들이 살고 있었고, 수군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황장목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묘당도는 약 400년 전 정유재란 때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함대가 주둔했던 곳이며, 이순신 장군은 1598년 2월 18일 수군 8천명을 거느리고 이곳에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을 설치했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 묘당도 본영을 중심으로 가리포진과 신지도진을 삼각축 삼아서 서남해로 침탈해 오는 왜구들을 막아냈던 것이다.

묘당도는 1960년 사적 114호로 지정된 충무사(忠武祠)가 있다. 후박나무 숲속에 자리한 충무사는 동재, 외삼문, 내삼문, 그리고 비각이 잘 정비 돼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승리한 뒤 애석하게 순국하자 장군의 영구를 이곳에 안치했다가 아산으로 모신 곳이기도 하다. 충무사 제실에는 이순신 장군과 이영남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충무사는 1598년 명나라 수군 제독인 진린이 충무공의 충심과 훌륭한 인품에 감동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고도 하며, 본래 관우를 배향한 사당이 이었으나 관우와 함께 이순신 장군을 함께 배향했다는 다른 기록도 전하고 있다. 정조는 친필로 충무사의 현판을 써서 걸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내려졌던 현판은 해방이 되면서 다시 내걸려 매년 4월 28일 탄신기념제와 11월 19일 제사를 봉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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