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도리 마을 전경

노화면 구목리(久木里․현 구석리)와 충도리(忠島里) 주민들은 옛부터 지명이 상극의 뜻을 품고 있다는 이유로 서로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재미있는 이야기 전해지고 있다.

구목리는 노화도 동북쪽에 바다를 끼고 위치해 약 85가구가 살고 있다. 노화읍사무소에서 지방도를 따라 약 6km 남짓에 자리잡은 해안마을 구목리는 북쪽으로 소안도와 횡간도를 마주하고 남쪽으로는 충도리를 바라보고 있다.

구목리는 처음 마을 뒷산의 생김새가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 거북이 ‘구(龜)’ 자를 써서 구목리(龜木里)로 부르다가 이후 비둘기 ‘구(鳩)’로 바꿔 구목리(鳩木里)라 불렀다.

반면에 노화도 남쪽 해안에 있는 충도리는 섬 전체에 삼림이 우거져 벌레가 많다고 해 충도리(蟲島里)로 불렸다고도 하고, 마을 주변 산 모양새가 벌레를 닮았다고 해서 충도리(蟲島里)로 불렸다는 각각 다른 설이 전해진다.

충도리 마을 앞은 본래 광활한 갯벌이었으나 간척으로 인해 노화도에서 가장 많은 농지를 갖게 됐고, 일제시대에 마을 주변에 여러 제방을 축조해 넓은 농지에서 많은 곡물이 생산되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벌레 ‘충(蟲)자’가 정말 불길한 때문일까. 이웃한 구목리의 마을이름을 비둘기 ‘구(鳩)’로 바꾸면서부터 구목리와 충도리 양쪽 마을 남녀가 결혼을 하면, 이혼을 하거나 사별을 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이후 양 마을에서는 구목리의 ‘구(鳩)’ 자와 충도리의 ‘충(蟲)’이 상극관계라고 해석해 양 마을이름 모두를 구목리는 ‘구목리(久木里)’로, 충도리는 ‘충도리(忠島里)’로 다시 한 번 개칭했다.

마을 이름을 모두 바꾼 뒤에도 양 마을에서는 처녀 총각 간 정혼을 상호 꺼리는 풍속이 한동안 이어져 왔다.

이에 대해 충도리 이장 김남곤씨는 “옛날부터 전설처럼 내려오는 마음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어른들을 통해 들었다”면서 “양 마을이 서로 결혼을 꺼렸던 것은 모르겠고, 오히려 충도리와 이포리 마을 간 문화와 경제적 차이 때문에 서로가 정혼하기를 꺼려온 것을 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남곤 이장은 “지금이야 교통이 발달하고, 마을 간의 경제적 격차가 크지 않아서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는 전설처럼 받아지고 있지만 섬 안에서만 평생을 살아야 했던 옛 시절이라면 서로 다른 점이 많은 마을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일 것 같다”고 말했다.

세상은 변했다. 통신과 교통이 발달한 오늘날 구목리와 충도리 청춘남녀들이 옛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진지하게 고민할 리 없으나 혹, 아주 오래 전 어느 시대에는 이 같은 속설 때문에 못 다 이룬 사랑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 충도리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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