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진 장보고유적관리사업소장

공직생활 시작부터 이곳 장보고유적관리사업소장으로 발령받기 전까지 30여 년 동안 난 군청 민원실에서만 근무했다.

그야말로 수백 번 수천 번을 민원인에게 친절하고 민원인편에 서서 일해야 된다고 스스로 다짐도 하고, 때론 윗분들께 수많은 강요도 당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결같아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의무로 받아들일 때도 많았다면 다른 공직자들은 날 뭐라고 손가락질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건에 따라 친절과 맡은바 임무에 기쁨이 함께 할 때만 있는 건 아니다.

상대 민원에 따라, 그리고 민원 종류나 원인 등에 따라 불친절하고 만족스럽지 못하게 해드릴 때도 있었고, 민원인이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 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민원인에게 마음을 열어 감동을 줌으로써 기쁨을 만끽하게 하는 게 우리 공직자들의 본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곳 장보고유적관리사업소장으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난 관람객들에게 근무자들의 친절을 특별히 강요하지 않았다.

내 임무에 소홀한 게 아니라 며칠 동안 그들의 근무 자세와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안내하고, 설명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친절하고 전문가 못지않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장보고기념관, 어촌민속전시관, 장보고동상 등 지금까지 내가 느껴보지 못했던 관광객 안내를 비롯하여 시설물 관리 등 어찌나 재미가 있는지 다음날 출근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려진다.

사실 이곳 소장으로 오기 전 전혀 관심 없이 그저 기념관 내지 전시관이라는 곳으로만 알았었고, 장보고대사가 완도 출신이며 무술이 출중했고 지략이 뛰어나 당나라로 건너가서 장수가 되어 병사 1천명을 거느리는 무령군 중 소장 직위에서 활동하다 귀국 후 완도 장좌리 장도 일대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 했으며, 해상무역의 거점지 완도에서 무역왕이 되었다는 정도 외에 장보고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갖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내 왔었다.

내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 더할 나위 없지만 사실 우리 완도군 공직자들 중 몇 퍼센트의 직원들이 장보고기념관, 어촌민속전시관, 장보고동상 등을 가족들과 함께 관람하고 장보고대사의 혼을 일깨우며 바다를 향한 미래의 꿈들을 펼쳐나갈 발상의 전환 기회를 가져 봤을까? 우리 완도 군민들 또한 장보고에 대한 관심이나 어촌민속전시관에 전시된 귀중한 자료들을 구경하러 얼마나 다녀 봤을까? 대부분의 군민들이 우리군의 유적지나 기념관, 전시관 등 수없이 많은 관광지를 다녀가 봤을까?

외국이나 타 지역 관광은 군민들이 선호하지만 우리 군이 보유하고 있는 관광지나 유적지를 한번이라도 다녀간 군민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 특히 금일, 고금, 신지, 약산, 금당, 생일, 주민들이 노화, 소안, 청산, 보길 여행길을 떠나 봤을까?

각 읍·면 주민들이 다른 읍·면을 얼마나 다녀 봤을까? 완도를 찾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참으로 많고 완도에 대한 관광 열기가 대단하지만 정작 완도군민들은 완도의 명소들을 얼마나 찾았을까?

이제는 우리 군민들이 우리 완도를 더 잘 알고 더 자랑하고, 각 지역의 명소들을 자주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앞으로 장보고유적관리사업소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장보고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장보고의 바다를 향한 끝없었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관람객들에게 심어주기 위하여 우리 사업소 전 직원들과 함께 더 공부하고 연구하여 친절은 물론 다시 찾고 싶은 기념관 및 전시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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