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후 완도는 과연 ‘예향’이라는 칭호가 걸맞을 만큼 예술이 꽃피는 그런 고장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그 정도는 아닐지언정 ‘예술 불모지’라는 오명쯤은 벗을 수 있을까? 지난달 30일 청묵회 회원 20여 명이 매주 목요일 모여 동양화를 공부하는 완도읍 개포리 예헌갤러리에 다녀오면서 이런 생각에 빠졌다.

이 잡념의 시작은 올해 봄 완도 최초의 민간 갤러리로 오픈한 이곳에서 타 지역의 서각인과 칠보공예가, 갤러리의 주인장으로 청묵회 회원이자 작가인 김진자씨가 3인 공동으로 개최한 작품전 때문이다. 작품전 이후 갤러리측은 완도에서 접하기 어려운 서각과 칠보공예 강좌를 유치하고자 애썼지만 강좌 당 최소 5인의 수강희망자를 못 채워서 무산됐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우연히 들었때 처음 가진 것이었고, 이날 다시 한 번 품게 된 것이다.

늦가을 햇살이 유리창에 부서지는 이날도 청묵회 회원 여섯 명이 노전 묵창선 선생에게 동양화를 사사 받고 있었다. 북종화의 명인으로 평가받는 노전 묵창선 선생은 인근 강진군 작천면과 완도읍을 왕래하면서 청묵회 회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런 세월이 벌써 6년 가까이 됐다. 회원들은 약산과 고금 등에서 배를 타고 와 그림을 배우는 사람도 있고, 신지면과 군외면 등에 두루 거주하고 있다.

그 자신들도 멀리 타 읍면에서 오가며 공부하는데도 회원들은 “멀리 강진서 발걸음 하셔 가르침을 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노전 선생은 이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대한민국에서 드물게 북종화를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죽은 뒤에도 북종화의 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노전 선생은 “작가는 내 그림이 팔릴 때보다도 나한테 배운 사람의 그림을 팔 때가 더 기분 좋은 법이다”고 제자들의 성취가 무엇보다도 즐겁다는 뜻을 에둘러 밝혔다.

노전 선생은 “배우는 사람들이 북종화든 남종화든 완벽하게 익히는 것이 바램이다”며 “청묵회 회원들이 그림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으며, 인정받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양화와 예술을 오가는 대화는 갤러리에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됐다. 그리고 노전은 이 곳에서 “완도는 진도와 여러 면에서 여건이 같은데도 왜 유독 예술 분야만큼은 진도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청묵회 회원들이 열심히 하면 100년 후쯤에라도 완도가 예향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매번 선거 때마다 지역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과감한 투자 필요성이 제기되고, 후보들 역시 앞 다투어 선거공약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그 때 뿐이다. ‘예향 완도’는 정말 꿈일 뿐일까?

저작권자 © 완도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