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철 완도군의회 의원

울릉도 도착 첫날 독도아카데미 소개 및 오리엔테이션을 갖고 독도에 관한 기본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독도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에 속하고 거주민은 27세대 28명이다. 일반주민 김성도씨와 김신열씨 등 2명, 독도 경비대 19명, 등대관리원 7명 등이 독도에 상주하고 있다. 동도와 서도로 나뉘어 있고 부속도서는 89개, 1982. 11월 문화재보호법 제25조에 의해 천연기념물 제336호 독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독도가 명명백백한 우리 땅이라는 근거는 고문헌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신라시대 1145년 삼국사기 신라본기, 고려시대 1451년 고려사 지리지, 조선시대 1945년 세종실록 지리지, 1531년 신증동국여지승람, 1770년 동국문헌비고, 1808년 만기요람, 1908년 증보문헌비고 등 수많은 역사서에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명시하고 있음에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어업권을 독점하려는 야욕에서 1905년부터 현재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하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독도 아카데미 강사인 울릉도 독도문화원장은 강의를 맺으면서 독도는 명백히 대한민국의 국토요 반만년 우리역사가 아로새겨진 우리 땅임을 강조하면서 독도를 지키는 방법은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독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독도아카데미에 참여했다는 것이 정말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우리 영토인 역사의 땅 독도를 알고 지키는데 미력하나마 작은 관심 하나와 내발자국 하나를 보탰으니 말이다.

오전 11시20분, 모든 교육 참가자와 관광객들이 울릉읍 사동항에 집결했다.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든 관광객 1,000여명의 독도 탐방객을 실은 여객선이 긴 뱃고동을 울리며 출항했다. 운이 좋았는지 운항 내내 순풍에 돛단 듯이 순조롭게 항해가 계속되었고, 선내 방송은 독도 경비대의 격려와 주의사항을 알리는 방송을 계속했다.

독도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20분이며, 선착장 부근만 답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1시간 30여분의 긴 항해 끝에 마침내 독도에 도착했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푸르렀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 국토의 동쪽 끝에 내가 왔구나하는 감동이 밀려왔다. 우선 이 순간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동도 정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이곳저곳을 둘러 봤다. 1000여명에 달하는 탐방객들도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 하려는 듯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독도의 바다는 하얀 손수건을 물에 적시면 푸른 물이 금방이라도 밸 것처럼 맑고 깨끗했다. 서도와 촛대바위, 숫돌바위를 배경으로 다시 기념 촬영을 한 뒤 선착장 안쪽으로 접근하니 경비대원 두명이 “여기부터는 제한구역입니다” 라고 말하며 막아선다. 아쉽지만 더 이상의 진입은 포기하고 돌아서니 둥근원형의 “대한국민국 땅”이라는 조형물 앞에 탐방객들이 모여서 촬영 중이었다. 나도 그들 틈에서 사진을 찍고 최근에 설치된 새주소 도로명판 앞에 섰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이사부길 55” 파란바탕에 하얀색 글씨로 명확하게 대한민국 도로명 주소가 기록되어 있었다.

정광태씨가 부른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랫말처럼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다. 이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돌아가자는 뱃고동 소리가 울린다. 발걸음 돌려 여객선으로 향하는데 왠지 모를 찡함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돌라오는 뱃길에 대부분의 탐방객들이 20여분의 짧은 탐방시간, 전지역 미개방, 짜임새 있는 설명 및 해설 부족, 포토존 미설치 등 여러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부분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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