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희(빙그레식당 대표)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대성병원에서 소 가용리 쪽으로 가다 보면 소를 키우는 축사 바로 옆에 온갖 채소들이 몫몫이 자리를 잡고서 마치 밭 전체가 조각이불을 한 채 펴 놓은 것처럼 오지고 옹글지던 작은 밭이 있었다.

운동하러 다니던 사람들은 가는 길을 멈추고 부모님이 지으신 농작물들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제각기 한마디씩 하곤 했다.

“워메! 저 배추 좀 봐 어쩌면 저 어른들은 저렇게 농사를 잘 지으실까? 저 할머니 할아버지 농사지으시는 것 보면 예술이야 예술!”

네모 반듯반듯하게 나누어 놓은 밭에다 콩, 고추, 고구마, 오이, 배추, 가지, 무우, 그리고 밭이랑엔 호박등 없는 것이 없이 다 있는….

엄마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깨 말고는 다 있는 밭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그리고 해질 무렵이면 두 분이 서서 지친 허리를 손으로 두드리시는 모습을 보면 “얕은 산 밑에 부잣집 마당보다 작은 밭을 다독이며 칠순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 그 등뒤로 노을이 질 때 나는 살아있는 만종을 본다. 살아있는 밀레를 본다”-오한숙희- 씨의 글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

그렇게 평생을 농작물들을 사람 다루듯이 하면서 아버님은 일년 내내 육아일기 쓰듯이 농사일지를 쓰신다.

깨알같이 쓰여진 아버지 농사일지를 보면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나도 그대로만 하면 고구마 감자 배추 콩 등을 재배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농사전문가이신 아버님은 농촌지도소에서 신품종을 개발하신 것이 나오면 제일 먼저 실험해보시고 그저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생각하시면서 생활해 오셨다. 그러다가 수년 동안 경작하던 그 밭이 팔려버리자 아버님은 끊으셨던 술을 몇 날 며칠 드셨다.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아버지 그러지 말고 우리가 돈 모아서 땅을 조금 사 드릴까요?” 했더니 “내가 언제까지 농사지은 다냐?” 그리 물리치셨다.

그러더니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님 친구 분이 그냥 노는 땅을 일구라고 하셔서 또 그 땅도 네모 반듯반듯하게 나누어서 또 하나의 예쁜 조각이불을 만들어 놓으시고는 “우리 밭에 좀 와 봐라” 하고 자랑 삼아 말씀하신다.

올망졸망 예쁜 밭에 가서 나는 매실도 따고 감자도 캐고 고추도 따오고, 마늘도 가져오고 양파도 가져오는 부모님이 애써 길러 놓으신 농작물들을 마냥 훔쳐가는 도둑인데도 더 못 줘서 안타까운 엄마는 이것저것 항상 차 안에 가득가득 채워주신다.

남들은 그 나이에도 건강하셔서 농사지으시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하지만 자식인 내 입장에서 보면 고생하시고 농사지은 다음에 왠지 쓸쓸하고 허탈하실 것 만 같아 늘 마음이 쓰인다.

부모님도 나처럼 갯트면 바닷가에 나가 고동도 잡고 농사도 짓고 그렇게 살고 싶으실 텐데….

훗날에 먼 훗날에 아버님이 써놓으신 농사일지를 보면서 때에 따라 농사도 짓고 바닷가에 나가 바지락도 잡고 우리 부모님처럼 욕심내지 않고 부부간에 따뜻하고 정겹게 그렇게 살고 싶다.

저작권자 © 완도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